Simon Morley interview in Noblesse
‘온화’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발음하면 입술이 오므려졌다 한순간 쫙 펴지면서 누구라도 쉽게 온화한 표정이 된다. 같은 방법으로 ‘짜릿’을 읽으면 마지막에 혀가 앞니 뒷부분에 절도 있게 닿으며 경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텍스트는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이먼 몰리의 작품을 감상할 때도 이렇게 한 자 한 자 혀끝으로 읽어내면 된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근대사를, 골드스미스 런던 대학교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한 후 사우샘프턴에서 동아시아 철학과 미학 관념에 대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10월 26일부터 12월 22일까지 한미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 Parallel >전을 준비하고 있다. 판문점에서 멀지 않은 DMZ 근교에 거주하면서 자신이 체험한 것, 트럼프 대통령 재임 중 일어나고 있는 긴장된 정치적 상황에 대한 견해를 절제된 색감과 평행한 수직선, 불분명한 텍스트로 그려내며 남북 간 경계와 그 사이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남북의 경계 근처에서 누구보다 한반도 분단의 의미와 그 긴장감을 크게 경험한 그에게 한국이란 나라는 어떤 역사로 자리매김하는 중일까?
2010년 경기창작센터 레지던시에 온 이후 지금껏 한국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현재 단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데 작가로서 작업에 몰두할 시간은 부족하지 않으신지요? 작업할 시간을 쪼개야 하기에 교수 일을 하는 게 쉽진 않지만 한국의 대학교수는 영국 대학교수보다 지루한 업무를 더 적게 해도 되어 좋습니다.(웃음) 제가 가르치는 시각예술은 그렇게 어려운 과목은 아니지만 영어로 강의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좀 더 쉽게 받아들일지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죠. 사실 큰 행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예술가가 예술 활동만 하며 생활하긴 어려운데, 교수로 일하는 건 예술가가 마음 놓고 작업할 수 있는 비교적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오기 전 영국에서의 활동이 궁금합니다. 저는 영국에서 19년간 살았어요. 영국은 저에게 집이죠. 또 영국은 많은 사람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중 하나이며 살기 좋은 곳입니다. 영국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미술사와 순수미술을 가르쳤으며 미술 비평을 하기도 했죠.
런던의 아트 신은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제적입니다. 그럼에도 왜 런던을 떠나 서울에 머무르기로 결심하셨나요? 영국에서 이미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곳이든 시간이 흐르면 장소가 주는 자극은 줄어들게 마련이죠. 저는 영국,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살아봤어요. 그래서 색다른 곳에서 사는 재미를 알죠. 런던을 떠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런던은 예술가가 되기에 아주 좋은 곳인 동시에 예술가로 성공하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는 점이죠.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요? 한국 예술계는 런던 예술계에 비해 작고, 한국 작가로만 이뤄져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더욱 다양한 문화의 유입과 교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가끔 한국 예술계는 새롭고 미래를 대변하는데 반해 런던은 과거를 대변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번에 한미갤러리 서울 < paralle >전에서 선보일 ‘Parallel’ 시리즈는 현재 남·북·미의 관계를 38선 근처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시선으로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이 시리즈에 담긴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많은 작품이 미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이 현 상황에서 남북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한국인은 그가 북한과 대화하기 좋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남북 관계는 매우 좋지 않았죠. 실제로 당시 저는 DMZ 너머에서 들려오는 총성에 극한 공포를 느꼈고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 전시는 그때 느낀 감정에서 비롯됐습니다.
 
‘Parallel’은 아무래도 남과 북을 상징하는 것이겠죠? 평행한 두 선은 절대 만나지 않는다고 배웠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그 선이 북한과 남한이라면 앞으로 어쩌면 만날 수도 있겠죠. 제 작품에선 평행한 두 선도 중요하지만, 선 사이의 빈 공간 또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한국에 거주한 이후 ‘사이(in-between)’의 개념에 특히 관심을 갖고 작업하셨는데 이 작품에서 선과 선 사이의 공간 또한 같은 개념인가요? 맞습니다. 제 이름이 사이먼인 것처럼 ‘사이’라는 단어와 저는 운명이 아닐까요?(웃음) 사이는 분명히 존재하진 않지만 가능성이 많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 이유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이기 때문이죠. 또 저는 사이라는 개념이 한국 문화에선 긍정적 의미로 작용하는 게 무척 신기해요. 서양인은 사이와 같이 애매한 개념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더하기와 빼기, 켜짐과 꺼짐, 뜨거움과 차가움처럼 이분법적 개념을 좋아하죠.
그 말엔 저도 동감이에요.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근간만 봐도 알 수 있죠. 서양인에게 ‘네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으면 대부분 머리를 가리키지만 한국인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면 가슴을 가리키는 것도 재미있어요. 한국인은 정신이나 마음이 몸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양인은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믿죠.
문산에 거주하면서 한반도 분단 상황에 대해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되셨고, 그래서 이번 작품으로까지 연결된 것 같습니다. 저에게 한국 분단은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에요. 남북 분단을 야기한 이들이 한국이 아니라 서양인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죠. 더구나 우리 집에서 북한이 보이기 때문에 분단은 저에게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옵니다. 한국전쟁 다시 영국 병사들이 유엔군으로 한국에 와 싸운 역사까지, 이 모든 것이 저와 남북 분단의 관련성을 보여줍니다. 그런 것이 이번에 전시할 제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고 볼 수 있어요.
지금까지 작품을 보면 이미지와 텍스트를 이용하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한국의 고서, 옛 장소, 영화, 남북 분단 등 매 전시마다 모티브가 다릅니다. 주변 상황에서 주로 영감을 얻는 편인가요? 저는 제가 어디에 머물고 있고, 어느 도시에서 전시회를 하는지 등과 연관해 작업하는 편입니다. 내가 있는 곳의 역사와 그곳과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거죠. 이렇게 작업을 하는 것이 그냥 일반적인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흥미롭습니다.
2012년에 선보인 ‘리얼 DMZ 프로젝트 2012’는 철원 일대에 흩어져 있는 안보 관광지 곳곳에 여러 작가가 장소 특정적 작품을 설치한 프로젝트입니다. 선생님도 월정리역에 작품을 설치했는데, 이런 성격의 전시가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하세요?작가로서 DMZ에 대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DMZ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소지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 때문에 결과물이 의외로 전형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DMZ에서 전시회를 열면 역설적으로 DMZ가 굉장히 일반적 장소인 것처럼 느껴져요. 역사의 상흔이 남아 있는 슬픈 장소임에도 말이죠.
2014년에 개최한 아트선재 라운지의 <북-페인팅>도 매우 한국적인 전시였습니다. 고서 컬렉션 10권의 표지를 단색화로 변형한 작품인데, 어떻게 시작된 작업인가요? 주한 영국 대사가 소장한 고서들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무척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그것에 대한 작품을 만듦으로써 한국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죠. 사실 저는 예전부터 책을 그린 그림 그 자체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 작업은 한국에 대해, 또 한국에 있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책을 여러 빛깔의 흰색으로 칠한 이유는 제 주변의 한국인이 저에게 “흰색은 한국의 전통적 색깔이고 한국인은 흰색을 무척 중요시한다”고 말해주었기 때문이죠.
당신의 홈페이지를 구경했는데, 마치 책의 인덱스처럼 정리해놓은 것이 흥미로웠어요. 거기서 수십 년 전의 전시와 작품까지 모두 확인할 수 있었는데, 전시 장소와 도시에 따라 작품의 바탕 컬러가 다른 것을 발견했습니다. 의도한 것이겠죠? 전시회가 잡히면 색을 활용해 저와 전시회가 열리는 곳을 연결하려고 합니다. 이탈리아 볼로냐 전시에서는 작품에 빨간색을 활용했어요. 볼로냐는 붉은 도시입니다. 예전에 공산주의자의 거점 도시였거든요. 볼로냐의 오래된 서점에서는 이탈리아의 공산당과 그 당원들에 대한 책을 읽으며 공산주의 사상을 이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일본에서는 흰색과 청자색을 활용했죠. 이번에도 저는 DMZ에서 찾을 수 있는 자연의 색, 그리고 군대나 군사와 관련된 색을 사용했어요.
보는 것과 읽는 것, 이미지와 언어 사이를 교란하는 작업은 이번에도 계속되었나요? 멀리서 보면 단색화 같지만 가까이 갈수록 이미지와 텍스트가 은밀하게 드러나는 방식 말이에요. 그 모든 것이 너무 고요해서 아주 가까이,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각각의 존재를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저는 고요한 게 좋습니다. 고요함은 정신 건강에도 이롭죠. 처음에 관람객은 단색 면이 눈에 띄겠지만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 뒤에 아련하게 그려진 이미지와 텍스트를 비로소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림과 만나게 되는 거죠.
갤러리바톤의 < Kiss Me Deadly > 전시에서는 로버트 앨드리치 영화의 특정 장면과 문학적 텍스트를 단색화에 접목한 작품을 선보이셨어요. 모호한 색면 가운데 드러난 양각의 텍스트가 매력적이었는데, 사실 옐로 컬러 바탕에 ‘God, Descartes, Hegel, Ecstasy, Fortune, Nietzsche’라고 적힌 작품 ‘God’를 보았을 땐 텍스트 사이의 연관성을 찾느라 애를 먹었어요. 저는 그 단어들을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티시즘(Eroticism)>이라는 책에서 가져왔어요. 각 단어는 각 챕터의 제목입니다. 저는 몇 년간 책을 읽으면서 그 단어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했고, 그 단어들과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결합해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 중 ‘the ascent of truth, the waters of silence, seeds of contemplation’이라는 텍스트는 미국 근대의 수도승 토머스 머튼의 책에서 가져온 것이죠. 저는 그렇게 정치, 심리, 문학, 철학, 종교 서적 등에서 발췌한 텍스트를 작품에 인용합니다.
이번 작품에는 어떤 문자가 이미지화되어 있나요? ‘War is over’라는 텍스트가 있습니다. 이것은 존 레넌과 오노 요코가 들고 있는 큰 포스터에서 가져왔어요. ‘towards a sociology of ecstasy’라는 텍스트도 사용했죠. 그럼 이 두 텍스트는 어떤 관계일까요? 나름 관련성이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전쟁을 좋아하기 때문에 지금도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런 측면에서 전쟁(war)도 일종의 도취(ecstasy)라고 봅니다. 작품에 사용한 텍스트는 처음엔 단편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오래 들여다보면 관련성이 명료해지죠.
혹시 준비 중인 다음 작업이 있나요? 네, 날짜에 대한 작품이에요. 1953, 1951, 1910 등 책과 편지에서 볼 수 있는 서로 다른 스타일의 날짜, 개개인에게 다르게 다가오는 날짜 등에 관해 작업하고 싶어요. 예를 들면 ‘1951’이라고 하면 한국인은 한국전쟁을 떠올리겠지만 저는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겠죠. 이런 측면에서 날짜는 매우 강력하고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한미갤러리는 영국 런던을 통해 한국의 현대미술을 국제 미술 시장에 소개하고 한국 미술의 입지를 세계적으로 넓히고자 2011년 런던에 개관했다. 2014년에는 서울 강남구에 두 번째 한미갤러리를 개관해 해외 주요 작가와 다양한 장르의 젊은 작가를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